나음이음 오재호가 씁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남드림빌 운영위원으로 함께했습니다. 그 자리를 이제 내려놓으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조금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첫 만남 — 강남보육원이라 불리던 때
제가 강남드림빌을 처음 만난 때는 아직 드림빌이 아닐 때였습니다. 그때의 이름은 강남보육원이었죠. 지금도 생생한 첫 기억은 뒤편의 숲과 앞에 나지막하고 낡은 ㄱ자 모양의 허름한 건물입니다. 운동장 바닥은 비가 오면 축축하고, 밤이 되면 어둑했었죠. 장마가 아니어도 천장 어딘가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 생활관은 일자로 길게 뻗은 군대 막사와 같았습니다. 딱 보육원에 어울릴 법한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원장님과 선생님들과의 미팅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마에서 ‘보육원’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워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시설에서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이 지어오신 아이들의 집의 새 이름은 ‘강남드림빌’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그리고 ‘빌라트’의 이름이라니, 너무나 낭만적이고 멋진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때라, 기꺼이 작은 재능을 보탰습니다. 아이들의 꿈이 커가는 집, 무럭무럭 자라는 드림빌을 생각하며 한옥의 처마를 닮은 별 모양의 로고타이프를 그렸습니다. 보육원 간판을 떼고 ‘강남드림빌’ 이름을 걸던 때, 원장님과 선생님은 많이 기뻐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돌사진, 그리고 피아노를 올리던 날
강남드림빌에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은 돌사진이 없다고 합니다. 선생님들께는 너무 죄송한 일이지만, 돌 사진을 찍어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해 주셨고, 여러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죠. 이 이야기는 강남드림빌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제 주변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여러 후원자들이 팔을 걷어 주셨고, 여러 사람들이 봉사를 해주셨습니다. 23년 겨울, 그 아이들이 무대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더군요.
강남드림빌 직원분들은 그야말로 극한 직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후원자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아이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좋은 일을 하면서 늘 미안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강남드림빌의 선생님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은영 원장님은 늘 선생님들이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지금도 원장님 말씀 속에서 직원들의 험담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을 잘 돌본다는 말만 반복되었죠. 그래서 피아노를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를 사서 올리는 데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납니다.
10년 뒤, 운영위원직을 내려놓으며
10년을 함께 걸어오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누면 반쪽이 되지 않고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두 번째는 우리 주변에는 작은 영웅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강남드림빌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후원을 해주고 계십니다.
이 지면을 빌려 후원자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강남드림빌의 최전선에는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지키시지만, 후방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이름 없는 후원자님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운영위원직을 내려놓지만, 부디 우리 강남드림빌의 소중한 꿈나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계속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